가축 사육권 도입으로 인한 사육마릿수 감축은
영세농가 사육 기반 무너져, 산업 위축 불보듯
농가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사육권 논의 충분히 이뤄져야
가축분뇨 처리, 축산 악취 해소 등에 대한 관심이 축산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최근 일부지만 가축분뇨 적정처리 등을 위한 가축 사육권 도입 얘기가 미래 전략 제시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사육권 개념은 이미 네덜란드 등에서 돼지, 가금류 등의 축종을 대상으로 도입,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선 관련 논의가 여전히 수면 아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개념, 도입 여부 등을 놓고 권리인지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 가축 사육권 제도 도입, ‘논란’
지난 7월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 내 농어업분과 제7차 운영소위원회 회의에서 축산소분과 하반기 운영계획 보고 내용 중 가축분뇨의 효과적인 관리와 적정 사육마릿수 관리를 위해 사육권 쿼터제 의제 추진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서 가축 사육권 제도 도입 논란이 일고 있다.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한 자연순환농업 실현과 가축분뇨 발생량 감소, 기업 축산 규제 등의 이유가 뒷받침하고 있지만, 양분관리제 도입과 관련된 연구용역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특위 소위원회 회의 중 가축 사육마릿수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축산업계에서는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며 현실에 맞는 한국형 양분수지 산정방식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해외는 가축 사육마릿수 관리 어떻게 하나
네덜란드는 1987년부터 분뇨생산 쿼터제도 도입을 통해 사육마릿수 총량을 직접 제한했다. 벨기에도 1995년 1차 분뇨처리계획을 발표하며 농가별 가축 사육마릿수를 제한했다.
가축 사육마릿수 총량제도에 따라 시행 직전 사육하던 축종별 가축 마릿수 별로 각 농가마다 초기 쿼터를 배정받고 쿼터 이상 생산할 경우 과징금이 부여되는 방식을 적용했다. 또한 가축사육밀집지역에는 신규 농가 진입이 금지됐다.
우리나라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04년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해 가축 사육마릿수 총량제 도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연구보고서를 내놨지만 당시 축산업계가 강하게 반발했던 적이 있다.
# 한국형 양분수지 산정방식 적용 필요해

이런 가운데 정부는 화학비료를 포함한 가축분뇨 퇴·액비의 양을 조절하고 관리하기 위해 내년부터 이른바 양분관리제를 도입하고자 현재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있다.
축산업계는 퇴·액비보다 훨씬 많은 양이 사용되고 있는 화학비료의 감축은 없으면서 가축분뇨가 토양에 미치는 양분 부하량만을 문제 삼는 것은 축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명규 상지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본지 주관으로 열린 ‘퇴비 부숙도 검사 의무화, 이대로 좋은가’ 국회 간담회 자리에서 “가축 분뇨의 자원 순환적 가치와 토양 복원 등 환경에 끼치는 긍정적 가치, 퇴·액비 생산 등으로 발생하는 지역 일자리 창출효과 등 가축분뇨의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 다양한 우수한 가치에 대해서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 채 안티축산의 거센 여론으로 인해 가축분뇨의 문제점에 대해서만 거론하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유럽 대다수 국가의 축산농가는 발생하는 가축분뇨를 축사 내 장기간 저장했다가 모아서 경종농가에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퇴비 부숙도 검사 의무화 제도 도입 등으로 원활한 부숙을 위해 충분히 교반을 하고 퇴·액비로 만드는 자원화 공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수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양분수지 산정방식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환경부나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예로 드는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하는 양분수지 산정방식은 우리나라 축산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기 때문에, 관련기관의 충분한 연구를 통해 한국형 토지수지 산정방식을 만들어 가축분뇨를 관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 사육권 도입, 양계 산업 전체 위축시킬 것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국내 양계업계는 현재 닭 사육마릿수가 많아 조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축 사육권을 도입해 사육마릿수를 줄이려는 것은 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관련 제도 도입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은 “최근에도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농가들이 시설 건립에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사육권까지 도입될 경우 영세 농가들의 사육 기반은 무너져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산업 전문가도 수급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정주 건국대 명예교수는 “사육권이 도입되면 농가가 사육할 수 있는 가축 마릿수가 정해지는 것인데 이 경우 공급이 갑작스럽게 감소하는 상황이 생기면 대처가 어렵다”며 “현재 닭고기와 계란이 공급 과잉 상태에 있다고 하지만 공급량은 언제든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따라 수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대한한돈협회는 ‘가축 사육권 도입은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는 자료를 통해 외국의 경우 명확한 양분관리 원칙이 있고 자국 내의 양분이 과다하면 화학적으로 만들어 내는 양분부터 중단시키며, 외국에서 들여오는 양분을 최소화하고 자국내 발생된 양분을 조정·관리한다고 주장했다.
한돈협회는 우리나라의 가축 사육권 제도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황이며 양분관리제 도입도 화학비료 감축 등 선결조건이 반드시 우선돼야 하며 농특위 축산 T/F에선 매우 신중하게 사육마릿수 감축을 거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축산농가, 사육권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립 필요해
한우업계에서는 네덜란드 등과는 다른 한국형 사육권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농경지면적 대비 사육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육마릿수 관리에 대한 법적,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사육권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한우업계의 한 전문가는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네덜란드의 성공적 사육권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형 사육권을 설계하고 감축목표를 설정해 적정 사육마릿수가 관리되는 방식을 우선으로 하되 기업축산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축산업에 대기업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사육쿼터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사육권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별도의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육권을 도입하면 농가의 규모 확대가 불가피한 만큼 가족농 개념을 도입해 정부가 지원하고 육성하는 한편 신규농의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육권을 회수해 검증을 통해 선발된 신규진입 농가에게 주는 등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한 다양한 방법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우농가 A씨는 “당초 사육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축산업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것을 막는 제도로 생각됐는데 갈수록 다른 개념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농가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개념으로 사육권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축산 지속가능성 차단하는 사육권은 반대
국내 낙농 업계는 사육권이 농가에게 가축 사육 권리를 인정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상은 농가당 최대 사육마릿수를 설정해 축산의 지속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제도라고 힐난했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현재 가축분뇨 양분부하량이 과도하다는 것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히 분뇨배출 기준이 아닌 퇴비화 과정을 거친 양분 기준으로 양분부하량을 재산정해 화학비료 감축 등 국내 양분관리 기본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회장은 “낙농가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과도한 가축사육제한 정책과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유제품 수입 증가 여파로 사육규모 확대는커녕 현 수준 유지마저 불투명하다”며 “지난해 기준 48.5% 수준에 그치고 있는 국산우유 자급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사육권의 도입 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먼저”라고 덧붙였다.
하태식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대한한돈협회장)은 “가축 사육권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은 양분저감인데 화학비료 등의 감축 없이 축산업만 규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양분관리제나 가축 사육권 도입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국내 양분관리 기본 원칙을 수립하고 양분 발생량부터 재산정해야 하며 양분총량이 아닌 관리 위주의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 회장은 이어 “대기업의 축산 진출은 반대하며 식량 안보 차원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축종별로 자급률을 설정해야하고 적정 사육마릿수는 논의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농수축산신문 2020.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