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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 어떻게 발전해 왔나] 한돈

작성일 2022-09-26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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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 어떻게 발전해 왔나] 한돈

서민 애환과 함께…국민 대표 먹거리 ‘우뚝’

쌀 생산 증대 퇴비 확보로 시작
광복 이후 도시 인근 전업 농가
80년대 수출산업으로 집중 육성
이 시기 발전 토대 품질 고급화

2000년부터 농가 급속하게 줄어
양돈산업은 전·기업화 자리매김
‘자조금 시대’ 열리며 전기 마련
한돈 우수성 다양한 홍보물 봇물


꿈에 돼지를 보면 재물이 생긴다는 꿈풀이가 있다. 자신이 돼지가 되거나 돼지 속에 파묻혀 돼지 행세를 하면 부자가 되거나 좋은 집에 살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같이 돼지는 우리 조상들에게 행운과 축복을 안겨다 주는 동물로 인식됐다. 

삽겹살이나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삶의 애환을 나누며 고단함을 달랬다. 영양가도 높아 국민의 심신의 건강을 일정 부문 책임져 왔다. 그 결과 돼지고기 소비량은 지난 30여년 동안 2.4배(1990년 60만톤→2021년 143만톤) 증가하며 쌀에 필적하는 국민대표 먹거리이자, 농업·농촌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음은 연도별 돼지사육 마릿수 변화와 한돈협회 역사를 통해 산업 발전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간략하게 살펴봤다.

 

# 돼지사육 마릿수 변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발간한 ‘축산연구 60년사’(2012년)에 따르면 1903년에 서양 돼지 품종 요크셔, 1905년 버크셔를 처음 들여왔다. 돼지 사육마릿수는 57만 마리로, 소 62만 마리보다 숫자가 적었다. 20년(1925년) 동안 마릿수가 2배인 115마리로 늘었다.

광복 이후 도시 인근에 전업 양돈이 생겨났다. 이전까지 돼지사육 주목적이 쌀 생산량 증대를 위한 양질의 퇴비 마련이었다면, 이때부터 돼지고기 확보가 목적인 전업 양돈이 처음 시작됐다.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해 돼지 숫자가 15만 마리로 급감했다. 휴전 협정을 한 1953년 농림부 축정국은 제1차 축산부흥 5개년 계획을 수립한다. 1957년 돼지 사육마릿수는 123만 마리로 늘었다. 6·25전쟁이 끝나자 도시 근교에서는 군부대나 공장의 잔반, 큰 양조장 술지게미 등으로 돼지를 키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업 양돈장 규모는 돼지 10~30마리에 불과했다. 

1977년 들어 소고기 소매가격이 돼지고기의 2배가 됐다. 가격 차이도 있지만 돼지고기 품질이 개선(웅취 제거)되며 돼지고기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돼지사육 숫자는 19 80년에 178만마리에서 1990년에 453만마리로 10년 동안 2.5배 증가했다. 2000년에는 821만마리로 10년 전보다 1.8배 늘었다. 

2010년 988만마리, 2020년 1108만마리로 증가세는 점차 둔화됐다. 1980년대 정부는 양돈을 수출산업으로 집중 육성시켰고, 업계는 이시기에 발전 토대를 튼튼하게 다졌다. 2000년까지 일본 수출 등의 과정을 거치며 품질이 크게 향상됐다. 

반면, 돼지사육 농가수는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수는 1930년 91만 3166호에서 1940년 102만 2595호로 늘었다. 1940년 전국 가구수가 437만 7973호인 것을 감안하면 전국 가구수의 23.4%에서 돼지를 키웠다. 

이후 2000년 2만 3841호에서 2020년 6078호로 20년 사이에 1만 7763호(74.4%)의 양돈장이 사라졌다. 2020년 전국 가구수 대비 양돈장 비율은 0.03% 수준으로 낮아졌다.

1994년(4분기)에 호당 돼지 사육 마릿수가 처음으로 100마리(109마리)를 넘겼고, 2008년에는 1000마리(1183마리)를 넘기는 등 빠르게 규모화됐다. 

규모별 비율을 살펴보면 1990년(4분기)에는 양돈장이 전국에 총 13만 3428호였다. 이중 1000마리 미만 양돈장이 13만 3022호(99.7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1000~5000마리 미만은 368호(0.28%), 5000~1만 마리 미만은 28호(0.02%), 1만마리 이상 규모는 10호(0.008%)로 나타났다.

2020년(4분기)에는 총 5942호 중 1000마리 미만 사육 농가는 2528호(42.5%)이며 1000~5000마리 미만은 3020호(50.8%), 5000~1만마리 미만은 289호(4.9%), 1만마리 이상은 105호(1.8%)를 기록했다. 지난 30년 동안 1000마리 미만 규모 양돈장은 99.71%에서 42.5%로 57.21%p가 줄어든 반면, 1000~5000마리 규모는 0.28%에서 50.8%로 50.52%p 늘었다. 

 

# 한돈산업 이끈 한돈협회

1978년 12월 대한양돈협회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다음 해인 1979년 12월에 정식 설립허가를 받았다. 한돈 관련 지식과 기술을 향상시켜 생산자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복지 증진 기여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1982년 선출된 전동용 7대~12대 회장은 1998년 13대 최상백 회장이 선출되기 전까지 17년 동안 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14대 김건태 회장 선출 이후 양돈협회는 급변했다. 양돈회관서 사무실을 이전했고,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2002년에는 ‘축산물의 소비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일명 자조금법)’을 공포하고, 양돈자조활동자금 창립 대의원회를 개최하는 등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2004년 4월 축산업계 최초로 의무자조금 거출을 시작했다. 양돈자조금을 활용한 TV, 라디오 등 언론매체를 통해 국내산 돼지고기의 우수성을 홍보했다. 

2006년 3월 지금의 제2축산회관 3층으로 이사했다. 2007년 5월 한·미FTA 반대 전국 양돈인 총궐기대회와 9월 한·EU FTA 브뤼셀 원정투쟁 등을 감행했다. 2008년 5월 한돈인증점 사업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한돈 소비처 구축과 소비자 신뢰도 제고에 크게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12월 정부의 돼지고기 원산지표시 의무제도 도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9년 1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전신인 돼지열병박멸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8월 협회는 돼지가격 전국시세 적용 방침을 발표했다. 지금은 없어진 서울공판장의 시세 급등락으로 인한 농가 소득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2012년 4월 대한양돈협회는 명칭을 대한한돈협회로 변경했다. 농가뿐만 아니라 육가공·유통·광고·마케팅·학계 등 국내 돼지고기 산업 모두가 ‘한돈’이라는 명칭 아래 하나가 되어 발전하자는 의미에서 명칭을 변경했다. 

이보다 앞선 1월 1일 가축분뇨 해양투기가 1997년 시작이후 14년 만에 전면 중단됐다. 돼지가격 폭락에 농가들이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실시했다. 

2014년에는 영연방FTA 비준반대 축산농가 총궐기대회를 주도했으며 축산단체장들은 15일 단식투쟁을 실시했다. 

2015년에는 양돈장 냄새저감 제품 효과 검증사업을 실시했다. 협회에서 직접 실험을 통해 제품의 옥석을 가려낸 첫 사례로 기록됐다. 2017년 4월부터 양돈 배합사료 품질 모니터링 사업을 시작했다. 

2018년 2월 무허가축사 적법화 기한연장 천막농성을 실시했다. 12월 한돈협회 창립 40주년 기념 한돈인 대화합 한마당 행사를 개최했다. 2019년 6월 한돈혁신센터를 준공했으며, 7월 ASF 대책 마련 촉구 총궐기대회를 실시했다. 

2달 뒤인 9월 안타깝게도 농가들이 우려했던 ASF가 경기도 파주에서 발생했다.

2020년 5월 한돈산업 사수·생존권 쟁취 기자회견 및 무기한 농성 성과로 같은 해 11월 ASF 희생농가들이 재입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돈혁신센터는 8월에 첫 분만을 실시했다. 2021년 제 20대 손세희 회장이 선출, 한돈인들의 권익보호 및 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지금 농가는 곡물·환율·대출이자 급등, 돼지고기 공급량 증가(출하+수입),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한 소비 둔화 우려 등 악재 속에 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꿈속에만 나타나도 행운이라는 돼지를 매일 실물로 보는 농가들이 모두 부자가 되길 기대한다.              

 

출처 : 축산경제신문 2022. 09. 23 (http://www.chukky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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